농부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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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연의 <라랄라 농장>
시연씨는 대학을 졸업하고, 사무직일에 취업을 해 직접 해 보지도 않은 일에 상담하고 대응하는 본인이 이상하게 느껴지고..
일손돕기 프로그램으로 실제 농촌 현장에 나가 흙먼지를 뒤집어 썼을때 느꼈던 떨림....
그렇게 첫 직장을 그만두게 되고 "생산자 하겠습니다!" 라고 선언을 하게 된 계기가 되었다.
농사의 "농"자도 몰랐지만 마음속 깊은곳에 숨어있던 농부라는 꿈이 튀어나와 버리게 된 것이다.
그렇게 준비가 안된 초보 농사꾼이었지만..............
그리고, 시골에서 여성농업인으로 농사를 짓는다는게 힘들고 어려웠지만...........
그 어떠한 어려움도 농사를 지으며 생활하는 시연씨의 앞날에는 무엇보다도
행복함으로 가득차지 않을까.... 싶습니다:)
주 소 : 충북 괴산군 청안면 운곡길 312
- 괴산군농업기술센터 | 2021-01-13 | hit 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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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디로 가지? 뭘 심지?’···나 정말 귀농할 수 있을...
- 직장인을 위한 ‘귀농학교’에 신청했다. 평일 저녁에는 서울에서 귀농 관련 강의를 듣고, 주말엔 농촌에서 현장 체험 등을 한다. “2주 코스야. 당분간 집에 늦게 들어오고 주말에 애를 보지 못할 텐데 괜찮을까?” 아내가 마지못해 허락했다. 입학원서와 자기소개서를 썼다. 도시에서만 생활한 38세 남성, 10년차 기자, 외벌이, 5세 자녀 있음…. 이 정도면 될 줄 알았는데 어라? ‘귀농하려는 이유는?’ 자기소개서에서 벌써 멈칫하게 되는 문항이 나왔다. ‘귀농의 핵심 가치는?’ ‘생계는 어떻게 꾸려갈 계획인가?’ ‘귀농하면 이웃에게 어떤 재능을 나눠줄 수 있나?’ 어렵다.
마음을 다잡았다. 지난 두달간 만난 귀농 멘토들은 ‘자기 철학이 없으면 작은 실패에도 도시로 돌아가게 된다’고 했다. 나만의 귀농 원칙을 세워보기로 했다. 농림축산식품부와 공동기획으로 귀농·귀촌 취재를 진행했다. 취재 과정에서 직접 또는 전화로 만난 귀농 선배 10명의 조언을 모아 5가지 기준을 만들어봤다.①가족 모두가 활동 가능한 곳을 찾는다
‘어디로 가야 할까요’ ‘어떤 작목을 해야 할까요’ 경북 봉화로 귀농한 김현희씨(52)에게 첫 질문부터 혼났다. 그는 “귀농지를 정할 때는 ‘본인’ 중심이 아니라 ‘함께 가는 가족 구성원 모두’를 생각해야 한다”고 말했다. “본인은 귀농하고픈 마음가짐이 있으니까 귀농해서 힘들어도 어느 정도 참고 살 수 있죠. 그런데 아내는요? 아이는요? 가족들은 귀농 생각을 공유하고 있나요? 모두가 활동할 수 있는 곳을 찾아야 해요. 아이가 있다면 무엇보다 아이가 중심이어야 하죠.”
전북 남원 산내마을로 귀농한 강병규씨(53)는 “지리산이 좋아 귀농했는데 젊은 귀농인도 많고, 아이들도 많아 다행이었다”고 했다. 인근 실상사가 귀농학교를 운영하다보니 생활기술 강의 등이 활발하다. 그의 아내는 강의를 들으며 친구를 사귄다. 딸은 친구들과 함께 ‘카풀’로 집에서 1.5㎞ 떨어진 초등학교에 다닌다.
전북 완주 봉동읍에 사는 우혜정씨(44)는 “시작부터 작은 마을 단위로 들어가지 않고 ‘반은 농촌, 반은 도시’ 같은 곳에 살면서 적응해보는 것도 방법”이라고 했다. 읍 단위 지역이나 도시 근처 농촌에선 가족들의 활동반경이 커진다. 귀농한 남편 따라 봉화에 온 최윤주씨(47)는 인근 도시 안동에서 한동안 직장생활을 하다 지금은 봉화, 예천 등에서 귀농 상담을 하는 사회적기업을 운영하고 있다.
②농사 외에 일거리를 찾는다
귀농 초기 농사만으로 돈을 벌긴 어렵다고 한다. 다른 일거리가 있을까. “마을마다 영농조합법인이나 협동조합이 있어요. 실무자로 일하면서 농촌에 적응하는 귀농인이 많아요.”(충북 괴산 이우성·58) “남의 농사 품팔이도 있어요. 벌이는 많지 않죠.”(경북 상주 장동범·59)
10년차 기자 경력을 살릴 방법은 없을까? 멘토들에게 물었다. 마을신문 기자, 글쓰기 강사 일을 권했다. 이번에는 ‘아내는 컴퓨터그래픽 디자이너였고, 회계도 할 줄 알아요. 일자리가 있나요?’라고 물었다. 멘토들이 ‘우리 마을로 오라’며 반색했다. 장동범씨는 “농업법인들이 회계를 몰라 어려움을 겪는다”고 했다. 이우성씨는 “마을 홍보물도 만들고 상품 디자인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이우성씨가 “시골에서는 돈 생각하고 일하면 돈이 안 되는데, 돈 버릴 생각하고 일하면 돈을 번다”고 했다. 무슨 말일까. “농촌에서는 먼저 관계를 쌓아야 하거든요. 재능 기부도 하면서 관계를 만들어가세요. 과일 하나가 나가면 두세개가 되돌아오는 데가 시골이에요.” 충남 홍성에서 농사짓는 금창영씨(50)도 같은 말을 했다. “버클리 음대를 나온 사람이 막 귀농해서 음악 학원을 차렸다고 해봐요. 음대를 가지 않은 주민도 음악 학원을 차렸어요. 여기선 아이를 아마추어가 하는 학원으로 보내요. 관계가 먼저지, 재능이나 기술이 먼저가 아니거든요.”
③주민과 잘 어울린다
마을 주민과 잘 지내는 법은 없을까. 금창영씨는 “내가 어떤 사람인지를 먼저 보여줘야 한다”고 말했다. “귀농인들은 농촌에 가서 ‘빈집 있어요?’ ‘좋은 땅 없나요?’부터 물어요. 자기를 보여주지 않고 집과 땅만 알고 싶어하죠. 이기적으로 보일 수 있어요. 내 소개로 지역에 들어와 잘 살면 문제없는데 못 살면 이웃들이 ‘누가 쟤 불러들였어?’라고 원망하죠. 귀농자들이 ‘저는 이런 성격의 사람이고 그래서 이 지역에 잘 맞을 듯해요. 지역을 위해서 이런 일을 제가 할 수 있어요’ 이렇게 시작하면 주민들도 경계심을 거둬들이고 전향적으로 생각하겠죠.”
전남 순천 화지마을로 귀촌한 ‘마을 맥가이버’ 김현철씨(49)도 비슷한 말을 했다. “어르신들이 찾아오셔서 뭘 도와달라고 하진 않으세요. 제가 먼저 찾아뵙고 알아보는 거죠. 그렇게 하다보니 외지인인 저에 대한 거부감이 없어 보였어요.”
④나와 맞는 작목을 선택한다
농작물도 유행을 탄다. 시장가격이 비싼 작목에는 너도나도 몰린다. 한때 블루베리와 아로니아가 그랬다면 지금은 청포도 ‘샤인머스캣’이 그렇다. 금창영씨는 “유행 따라 작목을 선택하지 말라”고 했다. “샤인머스캣도 좋은 시절 다 갔어요. 재배 면적이 너무 늘어 가격이 떨어질 위험이 있어요. 농업기술센터에서도 위험하다고 보고 보급을 중단하기 시작했죠.”
20년 전 순천으로 귀농한 장봉식씨(62)도 “가격이 좋은 건 내가 하는 순간 떨어진다고 생각해야 한다”고 말했다. “귀농하는 사람들이 걱정이 많다보니 귀가 얇아요. 나도 가격 좋다고 하니까 소도 키우고 복숭아도 했는데 하기만 하면 망하더라고. 가격 변동이 너무 큰 거죠. 여기도 매실 가격 좋을 때 귀농해서 매실을 시작한 사람이 있는데 지금 가격이 바닥을 치거든요. 많이 힘들어해요.”
금창영씨는 “다양한 종류의 작목들을 하다보면 자기에게 맞는 작목을 찾을 수 있다”고 했다. “제겐 양파와 마늘이 그래요. 겨울을 나는 작물이거든요. 애틋하고 마음이 가죠. 풀 관리도 쉽고요.” 이우성씨는 “고추가 잘 맞는다”며 “쪼그려 앉아 일하고 따는 걸 잘한다”고 했다. “근데 참깨, 들깨는 안 돼요. 잔손이 너무 많이 가고 갈무리가 힘들어요.”
⑤농사는 작게 시작한다
멘토들은 시작부터 큰돈 들이는 건 신중해야 한다고 했다. “농사는 지을수록 일머리가 생겨요. 농사 모르는 초보가 은행자금이나 정책자금을 몇 억원씩 빌려 투자하면 큰일나죠. 망치는 순간 그대로 빚이거든요.”(이우성)
홍성에서 두번째 귀농 기회를 얻은 김영남씨(32)도 비슷한 말을 했다. “작게 시작해 3000만원 정도만 날린 게 그나마 위안거리예요. 첫 귀농은 떠올리기도 싫어요. 많이 배웠다고 생각하려고요.” 4년 전 강원도 산골에서 소규모 친환경 양돈 축사를 했지만 1년 만에 접은 경험은 아프지만 약이 됐다. 지금 그는 900평(2975㎡) 규모의 논을 빌려 농사를 짓는다. 크게 무리하지 않는다.
경력이 쌓이다보면 소화 가능한 농사 규모를 가늠할 수 있게 된다고 했다. 장동범씨도 6년 전 처음 귀농했을 때는 1000평(3306㎡) 땅에 자급자족할 목적으로 농사를 지었다. 지금은 밭 3500평(1만1570㎡), 논 1000평을 빌려서 고추와 콩, 벼 농사를 친환경으로 한다. “농사를 짓다보니 이 정도는 할 수 있겠다 싶더라고요.”
■농지 빌려주는 은행이 있다고요?
농민이 고령으로 농사를 포기하거나, 도시로 이주하면 농지는 ‘노는 땅’이 된다. 이런 논과 밭을 매입해 귀농인에게 빌려주는 곳이 있다. 한국농어촌공사가 운영하는 ‘농지은행’이다.
농지은행은 경지정리가 잘 된 우량농지를 매입하는 ‘공공임대용 농지 매입비축’ 사업을 벌인다. 사들인 땅은 청년 농민, 귀농인 등에게 5년간 빌려준다. 농지은행이 비축한 우량농지는 7152㏊(2019년 기준)로, 이 중 7113㏊가 임대 중이다.
영농 경력 2년 이하 농민은 최대 1㏊(약 3025평)까지 빌릴 수 있고, 경력 2년이 넘으면 4㏊까지 임차가 가능하다. 한 농지에 신청자가 몰리면 40세 미만 청년 농민이 우선순위를 부여받는다. 농지를 임차받고 싶은 귀농인이라면 농지은행 홈페이지(www.fbo.or.kr)에서 원하는 지역을 선택해 ‘공공임대용 임대농지’를 골라 신청하면 된다.
농촌에 연고가 없는 귀농인이 이용하기에 좋은 제도이지만, 일부에서는 좋은 농지는 농촌 마을에 찾아가 직접 구하는 편이 낫다고 말한다.
충남 홍성 농민 금창영씨(50)는 “마을에 새 농지가 생기면 농사를 지으려는 마을 주민들이 먼저 임차하거나 매입한다”며 “특히 귀농인들에게 인기있는 지역일수록 농지은행에 매물이 나오는 경우가 적다. 먼저 주민들과 친해진 뒤에 알음알음 물어가면서 구하는 편이 더 낫다”고 말했다. 농지은행이 비축한 농지 대부분은 논으로, 밭이 많지 않다는 점도 한계로 꼽힌다.
농림축산식품부는 지난해 9월 농지은행의 매입농지 중 소규모 밭의 비중을 높이는 내용의 농지은행제도 개선방안을 내놨다. 매입 농지 최소 면적을 기존 1983㎡(약 600평)에서 1000㎡(약 303평)로 완화하고, 밭 매입 단가를 상향 조정하기로 했다. 농식품부는 “제도 개선으로 올해부터 공공임대용 농지 매입이 크게 확대될 예정”이라며 “청년농과 귀농인에게 도움이 될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 괴산군농업기술센터 | 2020-09-22 | hit 1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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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봉수 전 한국거래소 이사장] 한국자본시장의 수장에서...
- 충북 괴산 깡촌에서 14킬로미터 거리를 통학했던 ‘시골촌놈’에서 한국자본시장 수장의 자리에까지 올랐던 김봉수 전 한국거래소 이사장. 그런 그가 다시 고향으로 돌아온 지도 어느새 7년이 훌쩍 넘었다. 그리고 남들보다 늘 먼저 시장을 예측하고, 성과를 위해 치열한 하루하루를 살았던 김 전 이사장은 어느새 누구보다 부지런한 농사꾼이 됐다. 손수 가꾼 농작물로 마음에 맞는 사람들과 밥 한끼 먹는 행복을 알게 됐다는 그는 이제 흙 위에서 남은 인생 2막 향해 찬찬히 걸어나갈 생각이다.
증권사 대표시절부터 꾸준했던 귀촌 라이프
시작은 이미 십수 년 전부터였다. 키움증권 대표이사 시절, 시간에 쫓기듯 사는 삶이 고되게 느껴지면서 뭔가 새로운 삶의 돌파구를 찾기 위함이었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이 많이 하는 골프나 등산 등의 취미를 안 가져본 것도 아니나, 그걸로는 뭔가 부족함을 느꼈던 김봉수 전 이사장은 자연스레 자신의 고향을 떠올렸다.
“원래 시골에서 낳고 자란 ‘촌놈’이라 언젠가는 다시 자연에서 살고 싶다는 마음이 있었어요. 그러다 아예 귀촌을 결심하게 된 거죠. 고향에 11평짜리 소박한 통나무집을 짓고 ‘분저울 캐빈’이란 이름도 붙여줬어요. 2006년부터 주말이면 짬나는 대로 찾아와 농사를 지었습니다.”
그렇게 시작된 김 전 이사장의 귀촌 라이프는 사실 즐거움의 연속이다. 캐빈 앞 1,500평가량의 밭에 철마다 다른 작물을 심고 키우고 수확하다 보면 하루가 어떻게 흘러가는지 모를 정도다. 대표적으로 봄에는 하지감자를, 여름에는 김장배추와 무를 심어 겨울을 준비한다고.
“감자는 보통 3월 중순경에 심는데, 구황작물이라 심은 후 2달이면 수확이 가능해요. 그럼 8월쯤 다시 배추와 무를 심는 거죠. 문제는 수확이에요. 땅 규모가 있다 보니 배추만 해도 1,500포기 정도 되거든요. 저희 부부가 할 수 있는 차원이 아니더라고요. 그래서 키움증권 대표 시절엔 키움증권 직원들이, 거래소 이사장 시절엔 거래소 직원들의 도움을 많이 받았어요. 물론 수확한 농작물은 직원들 손이 서운하지 않게 그득 들려줬죠.”
최근에는 키움증권 봉사단인 ‘키움과 나눔’에서 여름 가을로 수확을 도와주고 있다. 수확물의 일부는 지역 내 고아원과 양로원에 나눠주는 일도 빼놓지 않는다.함께 먹는 밥 한끼의 즐거움
김봉수 전 이사장을 귀촌의 즐거움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게 하는 이유는 또 있다. 간간이 자신이 있는 괴산을 찾아오는 지인들 덕분이다.
처음 ‘분저울 캐빈’을 지었을 때부터 건너건너로 소식을 들은 증권사 CEO들이 부부동반으로 함께 이곳을 찾곤 했다. 찾아오는 사람은 많은데 어울릴 수 있는 공간이 적다 보니 2017년 통나무집 옆에 새롭게 집을 짓고, 기존 캐빈은 게스트하우스처럼 사용 중이다.
“사람은 누구나 자연과 함께하고 싶은 욕구가 있잖아요. 그런데 막상 제가 시골에서 밭을 가꾸며 산다 하니 ‘잘됐다’ 싶었던 것 같아요. 아무래도 비슷한 일을 하던 동종업계 사람들이 많다 보니 저와 비슷한 답답함을 느낄 수밖에 없겠죠. 그냥 종종 이곳을 찾아 땀 흘리고 함께 밥 한끼 하는 일이 그들에게 어느 정도의 위로가 되지 않았을까요? 제가 그런 것처럼요.”
아예 땅 한 켠을 얻어 주말농장처럼 그들만의 농사를 짓는 이들도 있다. 현재는 딸과 사위를 포함해 5쌍의 부부가 김 전 이사장과 함께 농작에 참여 중이다. 저마다 다른 작물을 심어 교환하는 재미도 쏠쏠하다.귀농귀촌, 일단 살아보고 정착 고민하는 자세 필요
누구나 그렇듯 은퇴 후 자신에 삶에 대한 두려움은 있는 법이다. 김 전 이사장도 당연히 그랬다. 귀촌을 결심하면서도 온전히 농사만을 짓겠다는 마음보다는 지역에서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찾겠다는 생각도 있었다. 하지만 한 해 두 해 시간이 흐르면서 그는 어떤 목표보다는 삶을 즐기는 법들을 배워가고 있다고 했다.
“처음엔 단순하게 조금은 삭막해진 정신세계를 순화시켜야겠다는 생각으로 내려왔던 것 같아요. 그런데 갈수록 자연과 친해지는 일이 너무 행복하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더라고요. 마음의 여유가 생겼다고 할까요. 최근엔 서예와 한시 공부도 함께하고 있는데, 제 인생 2막은 심신이 조금 더 풍요로운 삶이 될 것 같아 설렙니다.”
하지만 그는 귀농이나 귀촌이 보여지는 것만큼 쉬운 일은 아니라는 점은 강조했다. 특히 농사를 생업으로 하려는 사람이라면 한번 더 고민하고 검토하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말은 쉽게 했지만, 저도 여전히 농작물을 제대로 키워 수확하는 일은 쉽지 않습니다. 농약을 많이 쓰지 않다 보니 수확물이 형편없을 때도 있거든요. 고추의 경우에는 병충해에 약해 2~3년에 한 번은 농사를 망친다고 봐도 무방하죠. 그러니 무작정 귀농 혹은 귀촌을 하겠다고 뛰어드는 건 위험할 수 있습니다. 일단 자신이 정착할 지역을 고심해 선정하고, 어느 정도의 기간 동안은 임대로 살아보는 것이 좋습니다. 그런 다음 농사에 대한 자신감도 붙고 농촌 생활도 적응됐다 싶을 때 자신의 땅이나 집을 마련해도 늦지 않아요. 처음부터 욕심내기보다는 서서히 만들어가는 성취감을 느껴보시라 얘기해주고 싶네요.”
아침에 눈을 뜨면 오늘은 또 어떤 자연의 모습들이 자신을 반겨줄까 기대하며 흙으로 나선다는 김봉수 전 이사장. 그 어떤 거창한 계획을 세워둔 이들보다도 김 전 이사장의 내일이 더 행복하게 빛날 것으로 예상되는 건 어쩌면 당연지사다. - 괴산군농업기술센터 | 2020-08-21 | hit 1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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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괴산 하늘목장 이야기
국토의 64%가 산림인 나라 대한민국. 우리는 전 세계에서 최고 수준의 숲과 산악지형을 보유하고
있다. 수려한 자연풍광과 관광자원을 보유하고 있지만 각종 규제로 활용에 발목이 잡혀 있는 게
현실이다. 그러나 최근 자연 그대로의 산지를 활용해 동물복지를 실현할 수 있는 산지생태축산을
확대해야 한다는 여론이 모아지고 있다.농림축산식품부도 6차산업화의 일환으로 2013년부터 한국
형 산지생태축산 모델 구축에 역량을 쏟고 있다. 산지생태축산 활성화에 가장 적합한 축종으로 꼽
힌 염소, 그중에서도 유산양 산업의 경우 아직 걸음마 단계도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
지만 성공모델을 향해 달려가고 있는 목장이 있다.고지대 광활한 초원이 하늘과 맞닿았다는 의미
로 이름이 지어진 괴산 하늘목장이다.
◇ 가업으로 이어질 체험형 치유농업 현장으로 충청북도 괴산군 수암리 어느 산골. 4륜구동 차량
이 아니라면 올라갈 수 없는 아직 정돈되지 않은 산 밑 좁은 도로를 거칠게 따라가다 보니 믿을 수
없는 풍경이 눈앞에 펼쳐졌다.
괴산 하늘목장은 해발 600m, 약 10만평 초지가 펼쳐져 그야말로 푸른 초원 위 그림 같은 목장이다.
“우리 목장에서 사랑하는 사 람들과 힐링의 시간을 보내고 좋은 추억을 쌓을 수 있도록 국내 최고
의 치유농업형 목장으로 가꾸는 게 꿈입니다"수려한 풍광에 감탄하고 있던 기자에게 김운혁·김소
라 씨 부부는 아들이 목장을 잘 이어갈 수 있도록 기반을 다져놓고 있다며 간절한 소망을 밝혔다.
염소요리 식당 운영과 함께 유 산양에서 우유를 짜내며 목장경영수업중인 아들 김성화 씨의 미래
청사진을 김 씨 내외가 그려가고 있는 셈이다.대표적인 체험형 젖소 낙농목장으로 여주 은아목장
과 매일유업의 상하농원 등이 있지만 유산양 목장은 뚜렷한 부흥기도 없이 쇠퇴기를 맞이하고 있
다.
근친교배로 산유량이 급격히 저하되고 있어서다.역설적이게도 괴산 하늘목장은 육용염소 보어 사
육에서 점차 쇠퇴하고 있다는 유산양 목장으로의 변신을 준비중이다.
◇ 귀농 아이템 염소 선택…산전수전 다 겪어김운혁 씨는 담담하게 귀농 후 겪어 온 우여곡절을
풀어냈다.
건설업체 2곳 을 운영하던 김운혁 씨는 2005년 농촌으로 돌아가 편히 쉬고 싶은 마음에 귀농 아이
템을 고민하다 비교적 사육이 수월하다는 염소를 선택했다.과거 한우방목목장으로 운영됐던 부지를 매입하고 시
설비와 모축비를 포함 약 10억원을 들여 2005년부터 야심차게 육용 흑염소 150마리를 사육하기 시
작했다.그러나 첫해부터 1마리를 제외하고 모두 폐사했다. 다시 흑염소를 사들였고 빚은 늘어갔
다. 왜 죽어갈까? 폐사원인을 쫒기 시작했다.염소의 축사가 문제였다. 여느 염소농가들과도 똑같
았을 축사지만 염소들은 뿔이 걸려 사료 섭취가 불가능하거나 물을 마실 수 없었다. 염소가 느끼
는 주변 환경 스트레스가 고기 품질에도 악영향을 미칠 것이라 생각했다."염소가 자라면서 뿔이
걸려 목을 뺄 수 없어서 못먹는 거였어요. 그래서 뿔을 잘라내는 게 아니라 사료 투입구조를 바꿔
높낮이를 개선해 줬어요. 얘들도 주인이 하는 말을 알아들어요. 그래서 염소에게 푸념도 하고 이
런 저런 이야기들을 하며 상태를 살피기도 합니다. 저도 스트레스를 풀고 아이들 스트레스는 제가
풀어주는 거죠”김운혁 씨는 동물과의 교감을 강조했다. 수익을 창출해 의식주를 해결하고 자식을
길러야하는 게 가장 큰 목적이겠지만 염소들 또한 내 자식처럼 생각하고 교감해야 더 건강하게 키
울 수 있다고.이런 노력 때문일까. 실패를 거듭하던 염소사육은 차츰 안정세를 유지해갔다. 그러
나 2014년 11월, 또 한 번 아픔을 겪는다. 사냥꾼들이 풀어 놓은 사냥개들이 목장에 침입해 40여
마리의 생명을 처참히 앗아간 것이다. 당시 피해액은 3억원 가량. 당시 처벌할 근거 규정이 없어
안타깝게 봉변당한 사건으로 일단락 됐다.
◇ 가축에 주어진 자유, 고품질로 돌아와여러 시행착오 를 겪으며 김운혁 씨는 기존 전해 내려오던 염소 사육법에서 탈피해 새로운 사육법을 정립해 나간다.
그 노하우들은 괴산 하늘목장 카페에 기록돼 염소사육을 희망하는 귀농인들에게 교육자료로도 쓰
인다. 한국흑염소협회장이기도 한 김운혁 씨는 국내 염소1호 박사인 최순호 박사와 교육을 하고
있기도 하다."경험에 의해 내려오던 안 좋은 사육법을 개선하는 데 주력하고 있습니다. 고쳐나간
것들을 기록한 것이고요. 사실 별다른 사육법은 없습니다. 그저 365일 자연방목과 자유입니다."하
늘목장 염소들은 자유롭다. 초지에서 마음껏 뛰어 놀다가 축사로 돌아가기도 하고 그대로 앉아 낮
잠을 청하기도 한다. 김 씨는 인위적인 환경으로 가두기보다 자연 그대로 염소 습성을 나타내도록
해주는 것이 자신이 할 일이라고 생각한다고.이러한 환경 덕분에 폐사율은 0%에 가깝다. 건강한
염소들은 튼튼한 염소새끼를 다산해 주고 있다. 초지환경이 주는 최대 강점은 사료비용이 거의 들
지 않는다는 점이다. 일반 육용 염소농가는 평균적으로 마리당 35만원의 사료비용이 지출되지만
하늘목장은 자연순환농법으로 10만원 내외의 이유식 TMR사료비용으로 충분하다.대부분 생산비
에서 사료비용이 많은 비중을 차지한다. 사료비 절감은 농장 수익향상을 위해 필수적이다. 마릿수
를 늘려 더 큰 수익을 바라봐도 되지 않냐는 질문에 바로 손사래를 치며 “개체수가 늘어나면 주변
산간지역이 황폐화되므로 나에게도 피해지만 지역 주민들에도 피해가 된다”며 “산지축산을 지속
하려면 그런 욕심은 버려야 한다”고 말했다.이어 “우리 염소고기 음식점 손님들이 발길이 끊기지
않는 이유는 염소고기 특유의 누린내가 없기 때문이다"며 "그 이유가 바로 스트레스 받지 않고 자
유롭고 깨끗한 자연환경에서 자란 염소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그러나 괴산 하늘목장은 고기
용 염소에서 우유를 생산하는 염소로 목장 운영 품목을 전환하고 있기 때문에 육용 염소 수를 점
차 줄여가고 있다. 체험형 치유목장엔 고기염소보다 유산양이 적합하다고. 올해 뉴질랜드에서 수
입해 온 우수한 유산양들이 엄청난 산유량을 자랑하며 쉴 새 없이 고품질 우유도 쏟아내고 있다.
◇ 자연에 의한 '건강과 치유', '공존과 상생'"미래의 농업의 역할과 축산업이 지속가능성이 가리
키는 방향은 같습니다. 최우선적으로 국민 건강에 유익해야 합니다. 도농교류, 자연과 사람의 공
존과 상생이 키워드입니다. 사람과 마주하는 시간보다 전자기기와 마주하는 시간이 더 많은 도시
민들의 잠재된 감성을 자연과 동물로 깨워주면서 그들의 상처와 스트레스를 해소할 수 있어야 합
니다. 농업으로 오감만족을 할 수 있도록 보고 먹고 듣고 느끼는 모든 활동을 축산과 함께, 자연과
함께 즐겁게 할 수 있도록 하는 게 우리 농업과 축산이 나아가야 할 방향입니다"한 후계 축산인의
아버지이자 한 축산 단체의 회장인 그의 열변에서 진정성과 자신감이 느껴졌다.한국 농업의 미래
에 대한 고민의 끝에 치유형체험목장 전환이라는 결론에 도달했다는 김운혁·김소라 씨 부부.이들
은 육용염소부터 우유를 짜 내는 유산양까지 염소산업을 신성장동력으로 격상시키며 스펙트럼을
넓혀가고 있었다.괴산 하늘목장은 산지생태축산의 좋은 귀감으로 알려져 농림축산식품부가 주관
한 산지축산우수농가 10대 농가에 선정됐다. 친환경축산 대상도 지난해에 이어 2년 연속 수상했
다.김운혁 씨는 내년 봄까지 산책로와 꽃밭을 조성해 트래킹 코스를 만들 계획이다. 이미 중부권
최대 산지치유체험목장으로 부푼 기대를 한 몸에 받고 있어 괴산군청을 비롯한 주변 시·군에서 보
내온 특색있는 꽃과 나무들이 즐비하다.“앞으로 목장이 다듬어지면 양과 조랑말 같은 다른 축종도
들여올 계획입니다. 단순히 목장 자연환경보다 사람과 자연이 조화롭게 어우러지는 광경이 아름
다운 목장으로 가꾸고 싶네요. 아들이 이어서 운영해야 하는데 열심히 일궈놔야죠."그의 5년후, 10
년후가 기대되고 있다.
- 괴산군농업기술센터 | 2020-02-21 | hit 4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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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약초 꿀농원 신순식을 만나다
신순식은 3년전 평택에서 귀농해 벌꿀농원을 운영중이다.
벌꿀농원이기도 하지만 약초농원이기도 하다.
약초를 심어 농장주변을 가꾸고 있으며 주변에 밀원수가 될만한 온갖 나무들과 함께 벌꿀 농사를 동업으로 하고 있다.
그의 약초사랑은 전국적으로 유명하다.
정보화농업인들이 함께 씨앗나눔을 실천하고 있어 더 인기가 높다.
귀찮을만도한데 봄부터 늦가을까지 씨앗을 채종하고 봉지봉지 담아서
이름표를 붙여 우편발송을 하고 있는 훌륭한 농부다.
우리집 농장에도 여럿이 시집와서 살고 있다.
물론 우리집 아이도 그댁으로 시집을 갔지만 ....
꿀벌농원은 괴산읍 정용리에 위치하고 있다.
월곡마을회관 뒷편으로 언덕에 자리한 농원은 경사가 심하고
들어가는 입구가 좁아서 큰차는 들어갈 수가 없다.
참 부지런한 농부 신순식은 늘 텃밭에서 농사지은 농산물을 활용해 매일 요리를 선보인다.
침이 꼴깍 넘어가는 요리가 대부분이다.
가까우면 숟가락 들고 가고싶은 요리사다.
귀농귀촌 상담에 늘 협조해주셔서 고마운 벌쟁이다.
언제나 현장상담을 원하는 벌꿀희망자들에게 따뜻하게 상담을 해주시니 참좋은 멘토로 추천한다.
페이스북을 통해 늘 가까운 이웃으로 함께하는 신순식님.
꿀맛나는 삶을 칭찬해요~~~~
- 괴산군농업기술센터 | 2019-12-26 | hit 3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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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꾸지뽕 동막골 농원
동네 마지막집으로 향하는
괴산군 장연면 송덕2길 91-21번지에 자리하고 있는 꾸지뽕농원이다.
여름 오디와는 다르게 꾸지뽕은 늦가을에 수확을 한다.
부부가 내려온지는 벌써 10년이 훌적 넘어간다.
남편 김병환씨는 대기업에 다니다가 괴산으로 귀농을 결심하고 땅을 마련하고
흙으로 집을 짓고 나무를 심기 시작한다.
여러 작물들중에 김병환씨가 선택한 꾸지뽕은 당뇨에 좋다는 확실한 의지가 있었기 때문이다.
점점 당뇨환자들은 들어가는 추세에 있고 성인병예방을 위한 농사에
의미를 담고 의욕적으로 시작한 농사다.
어느새 뿌지뽕 농사는 청년기에 이르렀고 또다른 아이템으로 묘목을 판매하고 있다.
봄부터 여름까지는 묘목을 파는일에 열심이다.
가을에는 열매를 따고 가공을 한다.
꾸지뽕 가루와 꾸지뽕 약재로 가공을 하고
꾸지뽕 열매는 냉동실에서 급냉을 해서 판매를 하고 있다.
아내 이정화씨는 여러가지 농촌체험을 하고 있다.
천연비누와 화장품 만들기 체험을 하고 제빵수업도 받고 있다.
요양보호사 자격증도 취득하고 농사를 지으면서 새로운 일을 모색하고 있는 중이다.
- 괴산군농업기술센터 | 2019-12-24 | hit 3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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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종웅·방성녀 씨 내외, "말리지 마! 난 일밖에 몰라...
겨울 칼바람이 맵차게 몰아치는 산골이다. 마을의 품은 널찍해 헌칠한 맛을 풍긴다.
산비탈 따라 층층이 들어선 주택들. 집집마다 시원하게 탁 트인 조망을 자랑할 게다.
가구 수는 50여 호. 90%가 귀촌이나 귀농을 한 가구다. 햐, 귀촌 귀농 바람은 바야흐
로 거센 조류를 닮아간다. 마을 이장은 김종웅(76) 씨. 그는 이 마을에 입장한 1호 귀농
인이다. 김 씨의 이주 이후, 그의 소개나 추천에 이끌려 이곳으로 덩달아 귀촌한 지인들
도 많다고.
글 소설가 박원식 bravo@etoday.co.kr, 사진 주민욱귀농 이전, 김종웅 씨는 줄곧 서울에서 살았다. 특별할 것도 모자랄 것도 없이 무난하게. 그러
다 어느 날 문득 서울을 벗어나야겠다는 결심을 굳혔다. “더 이상 서울에서 살다간 목숨을 보존하
기 어렵겠는걸!” 그런 투의 독백이 가슴 밑바닥에서부터 절절하게 치올라 목으로 터져 나오
는 걸 깨닫고서였다. 몽둥이를 높이 쳐든 빚쟁이들에게 주야로 쫓겨서가 아니었다. 위험한 사상
을 유포하거나 발칙한 범죄를 자행해서도 아니었다. 그는 선량한 소시민의 노릇을 다하며 살아왔
노라 자부하는 인물이다. 사적으로 원한을 사거나 공공의 적으로 몰릴 행장 따위를 눈곱만치라
도 지은 바가 없었기에.
그렇다면 뭣 땜에? 단순하고도 절박한 이유 하나가 있었다. 몸이 자지러지는 적색경보를 울렸
던 것. 심혈관질환을 가지고 있었던 김 씨는 어느 날 졸도를 해 응급실 신세를 졌더란다. 뇌졸중이
었다지. 다행히 위기를 잘 넘기긴 했으나 불안과 두려움이 엄습했다. 이쯤에서 뾰족한 수를 찾
지 못하면 하나밖에 없는 명줄을 졸지에 놓칠 수도 있는 상황임을 직시하고 궁리에 궁리를 거듭했
던 것 같다. “옳다구나, 시골로 가자!” 여러 밤을 잠 못 이루고 눈을 끔벅이며 심오한 연구를 하
다 어느 아침에 내린 결론이 그랬다. 얘기를 들어볼까.
아이쿠, 이러다가 나 죽겠구나, 칠십도 안 된 나이에 그럴 순 없지, 설령 죽을 수밖
에 없다 하더라도 산골에서 죽자, 과수 농사를 지어 좋아하는 과일이나 실컷 따먹
다가 죽자, 그렇게 생각을 정리했어요. 그런데 말이죠, 시골에 살다 보니 건강이 엄
청 좋아지더라고. 그 무엇보다 서울에서 받고 살았던 스트레스라는 게 사라진 덕분
이라 봐요. 맑은 공기와 깨끗한 먹거리도 도움이 됐겠죠. 귀농으로 얻은 게 한두 가
지가 아니지만 건강 회복은 가장 크게 얻은 선물입니다.
사람의 몸뚱이는 내남없이 조만간 땅에 묻혀 한 줌 풋거름으로 돌아간다. 그러하
니 숨이 붙어 있는 동안 최선을 다해 남은 시간을 선용해야 한다. 김 씨는 산골
을 요번 인생 최후의 근사한 정처로 점찍은 뒤 미련 없이 서울생활을 청산했다. 미
련이 남을 만큼 화려하거나 열광할 만한 서울생활도 아니었다. 근면과 성실을 인생
의 교사로 여기고 오로지 바지런히 일하고 또 일했을 뿐이다. 그로써 처자를 어엿
하게 건사하고, 아울러 건전한 세상과 명랑 사회 건설에 암암리에 이바지했던, 그
지없이 평범하고 떳떳한 서울살이였다.
일 중독이 행복한 에고이스트
김 씨는 오랫동안 전파상을 운영했다. 전파상이 사양길에 접어들면서부터 자동차 정비일을 했다. 그의 별명은 맥가이버. 드라이버 하나면 뭐든 뚝딱 뜯어 고치
고 헤집어 살려낸다. “누가 뭐래도 난 유능한 전자 기술자야!” 그런 자부심으로 자
신의 직분에 충성과 충실을 다했던 모양이다. 도대체가 방황이나 일탈은 물론, 시
련과 굴곡이 없는 인생이었다는 거다. 그게 어떻게 가능한지 신비할 지경이지
만, 운명의 신은 보디가드처럼 그를 각별히 수호해 이 살벌한 세상의 파랑을 사뿐
히 건널 수 있도록 도운 것 같다.
그런 김 씨에게 귀농이란 어쩌면 생애 최초이자 최후의 도전이거나 반전일 게다. 그는 아내 방성녀(71) 여사에게 ‘고지식한 남정네’라는 소리를 넌덜머리나도
록 숱하게 들으며 살아왔다. 그러고 보면, 조용하고 점잖은, 좀 딱딱한 이 남자
의 돌연한 산골 이주란 ‘남산 위의 저 소나무’가 도봉산으로 이사 간 것만큼이나 신
기하고 기발한 행보라 할 수밖에. 느닷없이 들이닥친 난제를 기어이 풀어야
만 할 특유의 사정이 그만큼 절박했겠지. ‘건강 회복’이라는 미션 말이다.
“전파상이 호경기일 땐 수입도 짭짤했어요. 하루에 쌀 두세 가마에 해당하는 수입을 올렸으니까. 그것참, 그 당시 재테크에 눈떴다면 꽤나 재미를 봤을 테지만, 그
런 재주, 도통 없었기에 그저 저축이나 부지런히 했어요. 서울을 뜨려고 자산을 정
리해 보니 7억 정도의 자금력이 되더라고. 이것의 절반가량을 귀농 비용으로 썼어
요. 농토 구입과 집짓기에 필요한 자금으로.”
“귀농하신 지 9년이 지났죠? 일흔 나이를 목전에 두고서 농사를 택하셨어요. 그게 무모한 선택은
아니었을까? 최대치로 몸을 쓰는 게 농사라서. 게다가 건강에도 적신호가 왔는데.”
“제가 천성적으로 일을 좋아해요. 나는 왜 사는가, 무엇이 가장 즐거운가, 어느 날 제가 조용히 앉아 곰곰이 생각해보니 오직 일이 좋아 일에 사는 사람이더라고요. 서울에서도 열심히 일했지
만, 서울보다 마음의 여유를 가질 수 있는 시골에선 더욱 자발적으로 열심히 일하게 되더라고
요. 농사는 제게 적격이거든요. 게다가 과일을 좋아해 과수원을 하고 있으니 일석이조라 할까.”
“오직 일을 좋아한다는 말씀, 얼른 곧이들리질 않아요.(웃음) 일보다 더 즐거운 것들이 많은 게 인생이지 않나요?”
“집사람이 저를 두고 말하길, 너무나도 부지런한 사람, 불쌍할 정도로 일만 아는 남자, 놀아본 적이 없어 노는 방법 자체를 모르는 남자라 합니다. 그러나 어쩌나? 저는 일에서 성취감을 느껴
요. 아마도 일종의 일 중독자이겠으나 저는 그게 만족스러워요.”
“과수원의 수익성은 어때요?”
지금은 사과농사를 하지만 몇몇 작목을 두루 경험해봤어요. 매번 신통치 않더라
고. 농사 기술 자체가 서툴기도 했지만 판로가 늘 문제였어요. 현재는 사이버 판매
망을 구축해 그럭저럭 무난하게 굴러갑니다. 부부 두 사람의 인건비 정도 건지
는 수준이지만 이마저도 행운이지 않겠어요? 이 늙은 나이에 일하고 싶은 만큼 실
컷 일할 수 있다는 건 농사가 주는 최상의 즐거움이고요.
사람이 너무 한가하면 수상한 생각이 몰려든다. 그러나 오직 일벌레로만 살 수 없는 게 사람이라는 동물이다. 휴식과 놀이도 일종의 생필품이지 않겠는가. 저 명랑하고도 흥겨운 옛날 유행가
가 외쳐대듯이, 우리는 틈틈이 ‘노세 노세 젊어서 노세’를 구현해야 하는 것이며, 늙어서도 짬짬
이 잘 놀아야만 한다. 카를 마르크스가 얘기했듯이, 단지 노동에만 매몰된 인간은 짐승보다 불행
할 수도 있다.
그러나 김 씨는 일을 숭상하기를 단 한 번도 포기하지 아니한 채 살아왔다. 마르크스가 아니라 마르크스 할아버지가 왕림해 뭐라 고상한 조언을 해도 자신의 소신을 수정할 용의가 전혀 없는 인물
이다. 서울에서도 그랬듯이, 지지구재재구 귀여운 새들이 종일 노래를 하는 목가적인 전원에 내려
와서도 그는 자신에게 일의 대가(大家)라는 임명장을 수여하고서 쾌재를 부른 것 같다. 이렇게 자
신의 몸을 오직 자신의 일을 위해 고용한 사람의 집 안팎은 먼지 한 점 없이 청결하다. 농장일
을 마쳤더라도 밤늦게까지 외등을 밝혀 마당을 쓸고 닦고 다듬어야 직성이 풀려 비로소 발 뻗
고 편한 잠을 자는 사람! 일테면 하늘이 와지끈 무너진다는 특급 뉴스가 들려온다 하더라도 오
늘 할 일은 기어이 오늘 당장 완수하는 사람! 그의 아내 방성녀 여사의 증언이 그렇다. 아내는, 이
런 일벌레 남편과 사는 일이 때로 끔찍하지 않을까? 숨 막히지 않을까? 이쯤에서 잠깐 방 여사님
의 얘기를 들어보자.
“한마디로 일에 미친 양반이에요. 죽기 전엔 못 고칠 버릇이라 봐요. 귀농할 땐 이제 좀 즐기며 부부가 자유롭고 행복하게 살고자 했지만, 이미 몸에 밴 습성이 안 바뀝디다. 한잔합시다, 하
면 안 해! 놀러갑시다, 하면 싫어! 개미처럼 일하고 다람쥐처럼 굴레 속에서 빙빙 도는 인생이지
요. 건전하고 씩씩한 남편이지만 일 중독을 행복으로 여기는 에고이스트예요. 무엇으로 어떻
게 이 양반을 뜯어말릴꼬? 남편으로서도 일이 오직 즐거울 리 있으랴, 하는 생각에 새삼 연민을 느
끼기도 해요. 언젠간 저 양반 두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 가득 맺히더라고요. 아, 당신, 힘들어하는
구나, 덧없이 흐르는 노년을 아쉬워하는구나. 둘이서 껴안고 함께 엉엉 울었어요. 그러면 뭐하
나? 이튿날이면 다시 일벌레로 돌아가는걸.(웃음)”
한 달 생활비는 50만 원
일의 대가 김종웅 씨의 일 종목은 농장일과 가사에 그치지 않는다. 귀농 이후 뒤늦게 독학한 컴퓨터 실력을 바탕으로 괴산군청 사이버 기자로 맹활약을 해왔다. 충북 도지사가 임명한 충북 귀
농 홍보대사로도 활동한다. 게다가 마을 이장까지 맡아 동분서주! 76세 노인이 후루룩 손쉽게 해치
울 수 있는 일들은 아니니 가히 장관이다. 어쩌면 그는 자신의 노구에다 청년의 정신을 이식하
는 방법을 일찌감치 터득한 사람일 수도 있다.
귀촌·귀농인들은 흔히 동네 이장과 우호적인 관계를 맺기 위해 노력한다. 그래야만 정착이 빠르다고 널리 알려졌다. 이장을 마을의 절대 권력자로 보는 눈들도 있지 않던가. 하나, 김 씨의 생각
은 다르다.
“이장의 횡포나 전횡을 말하는 사람이 많지만, 제 경험으로는 그게 다 옛날 얘기예요. 요즘 이장들은 엄청 심한 시집살이를 합니다. 마을 심부름꾼일 따름이에요. 업무도 너무 많아요. 공무원 일
의 절반쯤은 도맡아 하니까. 활동비 20만 원이 나오지만, 무척 힘이 들고 내 시간 빼앗기고, 봉사
정신이 아니고선 감당하기 쉽지 않을 거라.”
“봉사정신으로 일한다 하더라도 고충이 많겠죠?”
“전엔 원주민과 귀촌·귀농인 사이에 갈등과 충돌이 잦았어요. 그걸 중재하고 화해시키는 일, 그게 이장 몫이라 여기고 나름 애썼어요. 지금은 원주민 비율이 확 줄어 텃세 같은 걸 부릴 세력 자
체가 거의 사라졌지만.”
“아마도 이 마을에 전무후무한 일꾼 이장이 납셨다고 정평이 났을 듯.”
“깐깐한 이장이기도 해요. 시골사람들은 흔히 쓰레기를 함부로 버리고 태우는데요, 전 그걸 가만히 두고 보질 못하겠더라고. 속으로 꾹꾹 누르고 참노라면 스트레스 받으니까.”
“한 달 생활비는 얼마나 쓰시죠?”
“도시에서보다 지출을 크게 줄일 수 있다는 게 귀농의 장점입니다. 우리 부부는 한 달 평균 50만 원쯤 쓰며 살아요. 그 이상 지출할 때도 있지만, 남아도는 달도 많았어요.”
“앗! 겨우 50만 원?”돈 들어갈 게 없습디다. 먹거리는 거의 자급자족을 해요. 술, 담배 안 하지, 외
식 안 하지, 불가피한 외출 외엔 틀어박혀 일만 하지, 뭐 돈 들게 있을까나. 약간
의 부식비, 공과금, 차량 유류비 정도만 해결하면 되니까. 애당초 집사람이랑 50
만 원으로 살자 다짐하고 귀농했는데 자연스럽게 실행되더라고.
눈치 빠른 독자라면 뒤에 이어진 김 씨의 언설을 이미 미루어 짐작하리라. 돈보
다 귀한 가치, 돈 주고 살 수 없는 만족과 행복의 요소에 관한 견고한 철학의 표명
이 있었으니, 그건 일에 관한 예찬이 아니면 달리 무엇일 수 있으랴.
인터뷰를 마치며 마지막 질문을 거창하게 해보았다. 열심히 사시는 당신에게 남모를 회한이 있다면 그건 뭐냐고. 한참을 생각하다 들려준 답은 뜻밖에도 정감에 찬 것이었다.
“허무하게 늙어가는 아내를 농장에 내놓아 얼굴을 그을리게 만든 것. 그 하나예요.”
김종웅 씨가 들려주는 귀농 준비 Tip
•비빌 만한 언덕이 있는 곳으로 내려가는 게 현명하다. 인척이든 지인이든 연고가 있을 경우엔 적응이 빠르고 외로움을 덜 수 있으니
까.
•시골에서 만족할 만한 소득을 올리기는 어렵다. 어느 정도의 자금
력은 필수다.
•원만한 처세를 하지 않을 경우 원주민들에게 상처를 받을 수 있
다. 다분히 보수적인 시골 풍토를 이해, 충돌만큼은 피하는 게 상책
이다.
- 괴산군농업기술센터 | 2019-10-29 | hit 5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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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덕평에 예쁜 카페가 생겼어요~~
11월 오픈을 앞두고 있는 옥슈슈 카페 주인 권은영 김재연 을 만나고 왔다.
막연하게 서울을 떠나고 싶었던 두사람은 서울의 송파에서 빵가게
-올 어바웃 카스테라-를 운영해오던 빵쟁이다.
솜씨좋은 아내는 빵을 굽고 과일청을 담그고 커피와 과일쥬스를 만들어 낸다.
남편은 음악을 즐기며 취미로 하던 목공실력으로 가게 인테리어를 도맡아 꾸민 솜씨쟁이들이다.
햇살좋은 가게는 덕평 3거리 못미쳐 바람의 화원 촬영장 바로 맞은편에 위치하고 있다.
괴산에도 이런 멋진 카페가 생겨서 생각만해도 기분이 좋다.
더군다나 주인들의 인상만큼이나 커피맛이 좋다.
분위기 좋구 커피맛 좋은 카페 옥슈슈.
카페 이름도 과감하게 바꾸었다.
이지역의 옥수수를 알리기 위하여
카페에서는 빵도 만들고 체험도 할 생각이란다.
카스테라 전문점이니 선물용으로도 아주 좋다.
지나시는 길에 들러서 빵도 사고 커피도 한잔 하고 가시면 좋을듯......
삶터를 서울에서 괴산으로 옮겨왔으니
괴산처럼 넉넉한 마음으로 천천히 적응해가시길 ...
옥슈슈 주인장님!!
농사 지어서 사는것도 좋지만
그대들처럼
지역의 농산물을 활용해 농산물 소비를 늘리고
지역을 알리는것도 참 훌륭해
괴산대학찰옥수수의 본고장인 괴산의 옥수수로
대한민국 최고의 빵을 만들어보시게나...
일단 격하게 환영합니다!!
- 괴산군농업기술센터 | 2019-10-18 | hit 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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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을농원 선녀와 나뭇꾼을 만나다
청천의 가을농원에 다녀왔다.
선녀와 나뭇군을 인터뷰하러 가긴 했지만
오시는 손님들이 많다는 얘기를 듣고 조금 일찍 출발해서 일손을 거들고왔다.
오늘 오시는 손님들은 손홍철 가을농원의 주인 친구가 인솔해서 온 분당과 용인에서 활동중인 미술 애호가들의 모임이다.
오늘 자연에서 그림을 전시하기 위해 작품을 들고 오셨다.
안주인인 박종임님은 몇일전부터 준비해서 특별한 요리를 선보였다.
원래 향토음식 연구회 회장님으로 오랫동안 활동을 하신 분이라
사과 떡부터 사과 부각을 후식으로 준비하고
꽃차를 배우셔서 오늘은 특별한 손님들을 위해 귀한 백련차를 내놓으셨다.
점심으로는 괴산의 유명한 버섯찌개를 준비하고
사과와 마당에서 따온 민들레로 상큼한 샐러드를
그리고 머윗대, 고사리나물, 묵은지를 볶아 부부김치를 내놓으셨는데
손님들의 감탄사로 마당이 소란스러웠다.
곳곳에 손수 만든 사과 식초, 복숭아 병조림, 사과잼을 예쁘게 병에 담아 전시하고
마당 곳곳에 안주인의 센스로 자연스러운 포토존이 만들어졌다.
이번 행사는 가을농원이 주민사업체로 참여하는 관광두레 프로그램으로 연결되었다.
앞으로 한달동안은 사과따기 체험이 이어진다.
한해동안 다녀가는 체험객은 대략 1000여명으로 괴산의 명소로 자리잡은지 오래다.
가을농원과의 인연은 특별하다.
2000년 형부를 따라 가족여행을 왔다가 괴산에 반하고 가을농원에 반해서
2년뒤 2002년 감물로 귀농하게 된 계기가 되었다.
참 인연도 신기하지....
서울에서도 대치동과 삼성동에서 테헤란로를 사이에 두고 같이 살았다.
지금은 청천과 감물에서 떨어져 살고 있지만 늘 마음은 형제처럼 자매처럼 정답고 따뜻하다.
든든한 형님 내외가 계셔서 걱정도 안하고 괴산으로 내려왔다.
괴산에서는 제일 큰 규모의 과수원이지만 바지런한 안주인이 많은일을 해내고 있다.
사과는 많은 양이 직거래로 판매되고 있고
오늘도 괴산군 농업기술센터 친환경 농업대학 사과작목과반 학생들의 방문이 있었다.
남편 손홍철님은 학생들을 과수원 현장견학으로 강의하고
아내 박종임님은 체험객을 위해 동부서주하는 모습이 참 보기 좋다.
아무래도 체험과 방문객이 많아서 두분이서는 힘들어 보인다.
두 아들이 있는데 서울에서 큰아들은 세프로 일하고
작은 아들은 수원에서 공무원으로 일하고 있다.
사과농사만 잘 짓는게 아니라 자식농사도 잘했다.
언젠가 이 농장을 이어받아 사과농사를 이어갈 아들은 과연 누가될까 궁금하다.
아이들이 어릴때부터 자라는 모습을 봐와서 각자 개성이 뚜렷하고 예쁜데
먼저오는 아들이 터를 잡지 않을까?
그때까지 두분의 이쁜 미소가 환하게 빛나도록 너무 무리하지말고 건강 챙기면서 일하시길 간절히 기도합니다....
- 괴산군농업기술센터 | 2019-10-17 | hit 4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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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애플랜드 이해숙을 만나다
사과와 복숭아가 주작목으로 18,000여평 드넒은 농원에
작업장과 집 체험장을 갖추고 있는 애플랜드는 친환경 유기농의 고장인
괴산군의 가장 유명한 관광지인 ‘산막이옛길’로 가는 길목
칠성면 외사리의 자연마을 중 하나인 오향동 언덕위에 위치하고 있다.
괴산에서 가장 높은 948m의 군자산과 괴강이 흐르는 아름다운 전경과
청정지역의 비옥한 황토땅에서
유기농 고장인 괴산군의 이미지에 걸맞는 깨끗하고 건강한 사과와 복숭아를 생산하고 있다.
귀농 8년차인 지금은 사과대학을 다니며 과수재배기술 익혀 고품질의 사과와 복숭아를 생산하고 있다.
“자연 그대로에 정성만 담았습니다”를 슬로건으로
안전한 먹거리 생산에 힘쓰고 있으며,
design요소 도입과 2,3차 산업으로의 진화를 통해 부가가치를 높이고 있다.
애플랜드의 자원을 활용하여 치유와 휴식을 통해 몸과 마음의 건강을 회복할 수 있는
체험학습장 조성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사과와 복숭아를 이용한 가양주, 식초, 천연비누와 화장품 만들기 등을 배우고
지금도 동아리활동을 꾸준히 하고 있다.
귀농을 결심하게 된 계기는 직장생활의 한계와 60세가 넘어서도 할 수 있는 자기사업을 모색하던 중
지금의 애플랜드 농원을 만나게 되었다.
처음엔 산을 개발하고 나무를 심으며 기술을 몰라 아주 힘들었다.
남편은 서울에서 광고 일을 계속하면서 주말에만 내려와 일손을 도왔기 때문에
산더미 같은 농장일은 항상 내차지였다.
그나마 오빠가 오셔서 도와주고 함께 힘든 일을 감당해 주었다.
작년부터는 다행히 남편이 아주 내려와서 농장일을 함께 하고 있다. 든든한 파트너와 함께하니 일은 반으로 줄고 능률은 두배로 늘었다. 이제부터는 체험과 힐링 치유의 공간으로 거듭나기 위해 시설을 조성중이다.
군자산과 마을 앞으로 흐르는 괴강의 아름다운 풍광이 한눈에 들어오는 위치에 있는
애플랜드의 장점을 살려 오토캠핑장과 체험장, 사과밭을 걸으며 산책할 수 있는 산책로를 조성중이다.
무엇보다 우리 부부는 큰딸 희조가 농장으로 돌아올 날을 기다리고 있다.
제과제빵을 배우고 푸드테라피(요리심리상담자) 자격까지 갖추고 현재는 도시에서 활동중이다.
대를 이어 농사짓고 살 수 있는 희망의 땅 애플랜드를 만들어 가고 있다.
앞으로 이 땅에서 펼쳐질 자연체험 학습장, 전통주 식초 등 농산물 가공체험을 통해
농부와 소비자가 함께하는 애플랜드를 꿈꾼다.
- 괴산군농업기술센터 | 2019-07-31 | hit 69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