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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업은 내 마지막 직업이다

농업은 내 마지막 직업이다​ 

 

용산 프로그래머, 농사를 꿈꾸다.

현재 1.5ha에서 친환경사과를 재배하고 있는 박상우 씨는 11년 전만해도 고객관리 및 무역관리 프로그램을 직접 개발해 A/S를 도맡았던 능력 있는 프로그래머였다. 2000년 배우자 유관순 씨와 결혼하면서 부부에게 전혀 연고가 없는 청주로 거주지를 옮기게 된다.​

 

 


 

 

"결혼 후 배우자에게 의류사업을 제안했고, 인천에서 옷가게를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청주에서 의류사업이 괜찮다는 정보를 듣고 청주로 이사갔습니다. 저야 대부분의 거래처가 서울이었지만 만들어진 프로그램을 유지·보수만 하면 된다고 판단했기 때문에, 청주에서도 충분히 업무를 볼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A/S가 밀려들어오면서 박 씨는 거의 출퇴근 비슷하게 서울로 출장을 가야 했다. 이때 자신의 선택이 잘못됐음을 느끼게 된 그는 젊어서부터 계속해왔던 일을 그만두고, 배우자와 함께 옷가게를 운영했다. 그러나 패션에는 감각이 부족했던 박 씨는 결국 고민에 빠지게 된다. "옷 판매가 적성에 맞지 않더라구요. 그래서 새로운 사업 구상을 시작했습니다.

 

하나뿐인 아들 재서도 점점 커가는데, 너무 늦게 끝나는 일은 피하고 싶었습니다. 고민 끝에 농업을 선택하기로 결정했습니다. 농사는 날이 저물면 하고 싶어도 할 수가 없잖아요." 현재 박 씨의 부모님은 충남 예산에서 벼농사를 짓고 있다.

 

귀농 전까지 주말만 되면 고생하시는 부모님을 돕기 위해 예산으로 직접 내려간 박 씨는 이때 농사에 대한 기본적인 기술을 익힐 수 있었다. 농기계를 다루는데도 능숙했던 박 씨는 인생의 마지막 직업으로 농사를 선택한 것이다.

 

용산 프로그래머, 농사를 꿈꾸다

아파트 처분으로 토지 마련

2005년 귀농을 결심한 박 씨는 본격적으로 정보 수집에 나섰다. 당시 유명했던 귀농사모 카페에 가입해 작물, 지역, 농업기술 등에 대한 정보를 수집하던 그는 귀농사모 충북 정기모임에 참석하게 됐다. "정기모임에서 만난 괴산지역 회원의 사과농장을 수확철에 방문했는데, 너무 환상적이더군요.

 

사과농사의 가능성을 체험한 것이죠. 즉시, 괴산에서 사과농사를 짓기로 결심하고 배우자와 지금 살고 있는 아파트를 처분하는게 어떻겠냐고 진지하게 상의했습니다. 평소 제 결정을 믿고 따라주었던 집사람이 이번에도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해 주었습니다.

 

" 아파트를 처분해 얻은 2억 원으로 사과재배지를 구입하기 위해 괴산의 부동산을 쉬지 않고 찾아다닌 박씨는 문광면 옥성리에 위치한 지금의 농장에 터를 잡았다. "사과사랑 동호회와 괴산군 농업기술센터에 문의해 알아본 결과 부부 두 명이 사과를 원활하게 재배하기 위한 면적이 1.3~1.6ha라고 하더군요. 그래서 부동산을 통해 수차례 알아보던 중, 지금의 농장터를 계약 했습니다. 하지만 현재 귀농을 문의하기 위해 농장에 찾아오는 분들에게는 부동산 중개업소 대신 직거래를 추천하고 있습니다. 제가 시세보다 비싸게 토지를 매입했기 때문이죠."

 

아파트 처분으로 토지 마련

배우자가 없었다면 귀농에 실패했다

1.5ha의 토지를 구입한 박 씨는 사과농사로 성공할 수 있다는 희망에 들떴다. 그러나 그를 바라보는 지역 주민들은 걱정이 앞섰다. 토지의 전 주인이 사과를 재배 하다 결국 포기했기 때문이었다. 또한 밭 중앙에는 두 개의 봉분이 버티고 있었다.

 

"가장 먼저 해결할 일은 봉분의 이장이었습니다. 일단 마을 어르신들을 통해 봉분의 주인을 수소문했죠. 그래서 이장에 대해 합의했습니다. 방치됐던 토지를 경운하고, 급한 경사를 완만하게 낮추기 위해 포클레인 두 대를 빌려 1주일간 밭의 기반조성을 마쳤습니다. 이후 사과나무 1년생 1,500주를 구입해 식재했습니다. 보통 3년생 이상의 나무부터 사과를 수확할 수 있기 때문에, 오랫동안 집에 생활비를 보태주지 못했습니다. 아마 집사람이 없었다면 저도 귀농에 실패하고 농촌을 떠났을 것입니다. 가장인 저 대신 지난 5 년간 생활비를 책임져준 집사람에게 늘 감사한 마음 뿐입니다."

 

박 씨가 1년생 사과나무를 선택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보통 묘목상에서 판매되는 묘목이 1년생이고, 판매되는 3년생 이상은 다른 밭에 심어져 있던 묘목을 뽑아서 심어야 하기 때문에 환경이 바뀌면서 나무에 악영향을 끼칠 수 있기 때문이다. 아울러 박 씨는 귀농할 때 과수를 선택한다면 향후 몇 년간은 수입이 거의 없다는 것을 명심하고 이를 극복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해 놔야 한다고 조언했다.

 

 


 

배우자가 없었다면 귀농에 실패했다

교육으로 부족한 내실을 채우다

2006년 귀농을 시작하면서 박 씨는 다양한 교육을 이수하기 시작했다. 농사에 대한 기본 지식은 있었지만, 과수 중에서도 사과에 대한 지식은 백지상태였기 때문이다.

 

먼저 농사에 대한 기본지식을 정립하기 위해 여주 농업경영전문학교에서 귀농교육을 이수한 뒤, 사과 사랑 동호회, 괴산군 농업기술센터 등을 통해 사과재배에 대한 전문지식을 익혔다. 하지만 이것으로도 부족하다 느끼자 2009년 충북마이 스터대학 사과과정에 입학했다.

현재 3학년에 재학 중인 그는 장기적인 교육을 통해 보다 전문성있는 사과재배지식을 습득하고 있다.

 

"제 이름을 걸고 처음 시작하는 농사를 사과로 선택하고 나니 걱정이 앞섰습니다. 하지만 제게 가장 필요한 것은 교육이라는 생각에 직접 찾아다녔습니다."

 

20~30년 정도 경험 있는 동기들이 30명에 달한다는 마이스터대학 사과과정에서 박 씨는 교육과정은 물론 동기들의 경험 및 정보공유 등을 통해 자신만의 재배기술을 하나, 둘 정립해 나가고 있다고 밝혔다.

 

 


 

 

교육으로 부족한 내실을 채우다

귀농 5년차, 드디어 사과를 재배하다

사실 박 씨가 교육의 중요성에 대해 강조하는 이유는 사과재배의 지식 및 경험부족으로 300주를 베어버린 아픔 때문이다.

 

"3년 전 겨울에 가뭄이 무척 심했습니다. 겨울에 무슨 관주가 필요하겠냐는 생각에 그냥 놔뒀죠. 그런데 봄이 돌아오자 300주가 동해로 고사해 절망에 빠졌습니다. 마을 어르신들에게 찾아가 물어보니 겨울가뭄때 관주를 해주지 않으면 겨울을 나는 동안 나무가 살기 위해 모든 영양을 소비해버려 결국 봄에 동해를 피할 수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제 무지가 애꿎은 사과나무만 죽인거죠. 나무에게 얼마나 미안했는지 모릅니다."

 

 


 

 

귀농 5년차, 드디어 사과를 재배하다

사과나무를 심은지 4년이 지난 2009년. 첫 수확을 기대했지만 당시 기후에 적응된 농법을 사용하지 못해 수확에 실패한 박 씨는 마이스터대학에서 습득 한 지식과 경험을 모두 밭에 투자했다. 그 결과 지난해 18kg 컨테이너 박스 800개의 첫 사과수확을 거둘수 있었으 며, 4,000만 원의 수익을 창출했다.

 

1,000박스를 수확한 올해는 6,000만 원의 수익을 올리면서 그동안의 빚을 청산할 수 있게 됐다. "올해로 대부분의 빚을 청산하게 되면서 이제 한숨을 돌릴 수 있게 됐습니다. 아직까지 청주에서 농장으로 출퇴근했는데, 이제 내년 수입을 기초로 집을 장만할 수 있게 됐네요. 하루빨리 가족들과 함께 농촌으로 와야죠."

 

귀농하면서 눈만 뜨면 농장이 걱정돼서 매일 새벽같이 농장에 가야 직성이 풀린다는 박상우 씨의 성실함과 사과나무에 대한 애정이 귀농정착에 성공할 수 있도록 만드는 원동력이 아닐까? 귀농에 대한 아름다운 환상만을 가지고 하루빨리 농촌으로 향하는 이들에게 박 씨의 사례는 철저한 준비와 성실함 없이는 귀농에 실패할 수 있다는 일침을 가하고 있다. 귀농은 환상이 아닌 현실임을 잊어서는 안될 것이다.

귀농 5년차, 드디어 사과를 재배하다

 

 

<자료 출처 : 농림수산식품부, 새싹농부! 희망을 노래하다,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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